계속 애쓰는 것만이 답은 아닐 때, 뇌가 잠시 힘을 빼는 시간
어느 저녁,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려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보자.
자료도 충분히 찾아봤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는다.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고쳐보고, 조금만 더 집중하면 답이 나올 것 같아 계속 자리를 지킨다.
시간은 지나는데 생각은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결국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고 창문을 연다. 집 근처를 천천히 걷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으니 머릿속에 꽉 차 있던 생각도 조금씩 느슨해진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
이런 경험은 일상에서 생각보다 흔하다. 어려운 문제를 계속 붙잡고 있을 때보다 잠시 다른 일을 하거나 산책을 했을 때 해결 방법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뇌과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때 기본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를 비롯한 여러 뇌 네트워크를 살펴볼 수 있다.
DMN은 단순히 ‘뇌가 쉬는 모드’를 의미하지 않는다. 외부의 특정한 과제에 집중하지 않는 동안에도 뇌에서는 다양한 활동이 이어지며,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리거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과정 등과 관련해 DMN의 역할이 연구되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더 세게 밀어붙이는 것보다 잠시 힘을 빼는 것이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본모드 네트워크(DMN)란 무엇인가
기본모드 네트워크는 뇌의 특정한 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여러 뇌 영역이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활동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내측 전전두피질, 후대상피질과 쐐기앞소엽, 측두엽 안쪽의 일부 영역 등이 DMN과 관련된 영역으로 연구되어 왔다.
DMN이 뇌과학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는 독특한 활동 특성 때문이다.
사람이 특정한 과제를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을 연구하던 과정에서, 과제를 수행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일정한 활동을 보이는 영역들이 발견됐다.
이러한 관찰은 뇌가 외부의 특정한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 순간에도 완전히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이후 연구가 이어지면서 DMN은 단순한 휴식 상태와 관련된 네트워크가 아니라는 사실이 점차 알려졌다.
개인의 과거 경험을 떠올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며, 미래의 상황을 상상하는 등 다양한 내부적인 정신 활동과 DMN의 관계가 연구되고 있다.
뇌는 쉬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집중하고 있을 때 뇌가 가장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는 뇌도 쉬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뇌 활동은 이렇게 단순하게 나뉘지 않는다.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뇌에는 상당한 활동이 나타난다. 우리가 창밖을 바라보거나 잠시 멍하니 있을 때에도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이어질 수 있다.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릴 수도 있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각날 수도 있다.
현재 자신의 생활을 돌아볼 수도 있으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할 수도 있다.
이처럼 외부의 특정 대상보다 자신의 내부적인 경험에 관심이 향하는 과정에서 DMN과 관련된 활동이 관찰될 수 있다.
따라서 DMN을 단순히 ‘휴식 모드’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내부적인 생각과 관련된 뇌 네트워크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집중하면 왜 피로를 느낄까?
업무를 처리하거나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일정한 수준의 집중을 유지해야 한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더욱 많은 인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는 전전두피질을 비롯한 여러 뇌 영역과 네트워크가 관여한다. 목표를 유지하고 정보를 조절하며 충동적인 반응을 억제하는 과정에도 지속적인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인지적 노력을 무한정 유지할 수는 없다.
오랫동안 집중하면 피로를 느끼고 주의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같은 일을 처리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흔히 이를 ‘전두엽이 지쳤다’고 표현하지만, 인지적 피로를 단순한 에너지 고갈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인지적 피로에는 수면, 스트레스, 동기, 작업의 난이도, 주의 조절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전두엽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다는 개념보다 지속적인 인지적 노력이 집중과 판단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
잠시 다른 활동을 하거나 걷거나 눈앞의 과제에서 주의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계속 같은 문제를 붙잡고 있을 때와는 다른 사고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
집중을 멈추면 DMN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가 복잡한 계산이나 업무에 집중하고 있을 때와 특별한 과제 없이 자신의 생각을 따라갈 때 뇌의 활동 양상은 같지 않다.
외부 과제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주의와 실행에 관련된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대로 특정 과제에서 벗어나 내부적인 생각으로 관심이 이동하면 DMN과 관련된 활동이 나타날 수 있다.
이때 떠오르는 생각은 매우 다양하다.
과거의 경험을 떠올릴 수도 있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할 수도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생각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다가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면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할 수 있다.
어제 있었던 대화를 떠올리다가 다음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할 수도 있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자기 이해와 연결되고, 다시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DMN은 이러한 내부적인 사고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산책할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이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었는데 답이 나오지 않다가, 산책을 하는 순간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샤워할 때나 잠들기 전에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이를 흔히 ‘뇌가 쉬니까 창의력이 좋아진다’고 설명하지만 조금 더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
창의성은 하나의 뇌 영역이나 네트워크만으로 만들어지는 기능이 아니다.
기억, 주의, 지식, 동기, 감정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관여한다.
다만 모든 주의를 하나의 문제에 고정하고 있을 때와 잠시 주의를 내려놓고 자유롭게 생각할 때 사고의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DMN은 이 과정에서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을 떠올리고 서로 다른 정보를 연결하는 과정과 관련해 연구되고 있다.
또한 창의적인 사고에는 DMN뿐만 아니라 다른 뇌 네트워크와의 상호작용도 중요하다.
따라서 DMN이 활성화되면 창의력이 자동으로 높아진다고 말하기보다는, 집중 상태에서 잠시 벗어나 내부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이어가는 시간이 새로운 연결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다.
‘힘을 뺀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힘을 뺀다’는 말을 오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힘을 뺀다는 것은 모든 노력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공부를 하거나 업무를 처리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익힐 때는 집중과 노력이 필요하다. 목표를 세우고 주의를 유지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문제는 필요한 노력과 불필요한 긴장을 구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계속 반복하면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충분히 준비한 뒤 잠시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등 과제에서 주의를 돌리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이런 휴식은 문제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좁아져 있던 주의의 범위를 잠시 넓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집중과 휴식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번갈아 필요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스트레스가 높을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반복되면 마음이 긴장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뇌와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작동한다.
편도체를 비롯한 여러 뇌 영역이 위협이나 중요한 자극에 반응하고, 자율신경계와 호르몬 체계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반응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긴장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문제는 이러한 스트레스 반응이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는 경우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수면과 기분, 주의력, 기억 등 여러 측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스트레스가 뇌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따라서 ‘힘을 빼는 것’은 단순히 편안하게 사는 태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필요하지 않은 긴장을 줄이고 집중과 휴식 사이에서 적절한 전환을 만들어주는 것도 일상적인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특정한 휴식법 하나가 모든 사람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거나 뇌 구조를 보호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상태와 환경에 따라 반응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몰입은 항상 긴장한 상태일까?
흥미롭게도 최고의 집중 상태가 항상 온몸에 힘을 주고 긴장한 상태인 것은 아니다.
운동선수나 음악가, 숙련된 기술자가 자신의 능력을 자연스럽게 발휘하는 모습을 생각해보자.
처음 기술을 배울 때는 동작 하나하나를 의식적으로 확인한다.
하지만 숙련도가 높아지면 많은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런 상태를 흔히 몰입 또는 플로우(flow)와 연결해 설명한다.
플로우 상태와 관련해서는 전두엽의 일부 기능 변화를 설명하는 ‘일시적 전두엽 저활성화(transient hypofrontality)’ 가설이 제안되어 왔다.
하지만 이를 모든 몰입 상태를 설명하는 확정된 공식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현재도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숙련된 사람은 모든 행동을 매 순간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자기검열이나 과도한 생각을 줄이고 필요한 정보와 행동에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효율적인 수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잘한다는 것은 항상 더 많은 힘을 쓰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세게’가 아니라 ‘적절하게’
현대인의 생활에서는 계속 집중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 쉽다.
업무가 끝나도 메시지를 확인하고, 쉬는 시간에도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뒤처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뇌는 계속해서 한 가지 상태만 유지하도록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다.
집중해야 할 때는 집중하고, 과제가 끝나면 잠시 주의를 내려놓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DMN과 관련된 내부적인 사고가 나타날 수 있고, 과거의 경험을 되돌아보거나 현재의 자신을 생각하거나 미래를 상상할 수도 있다.
결국 ‘힘을 뺀다’는 것은 게으르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언제 힘을 주고 언제 힘을 풀어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능력에 가깝다.
어떤 문제를 아무리 붙잡아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잠시 자리를 떠나는 것, 하루 동안 많은 정보를 받아들였다면 조용한 시간을 갖는 것, 걷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을 억지로 막지 않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사고방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기본모드 네트워크는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뇌는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기억을 꺼내고 경험을 연결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때로는 앞으로의 상황을 상상한다.
그러니 모든 순간을 억지로 생산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때로는 잠시 멈추는 것이 다시 집중하기 위한 준비가 될 수 있다.
생각이 잘 풀리지 않는 날에는 조금 더 세게 밀어붙이는 대신 잠시 힘을 빼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 짧은 틈에서 뇌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이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주 묻는 질문
Q1. 멍하니 있으면 DMN이 활성화되나요?
DMN은 외부의 특정 과제에 집중하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활동으로 처음 주목받았다. 하지만 단순히 ‘멍때리면 DMN이 켜진다’고 설명하기에는 실제 뇌 활동이 훨씬 복잡하다.
자기 관련 사고, 기억, 미래에 대한 생각 등 다양한 내부 정신 활동과의 관계가 연구되고 있다.
Q2. DMN을 활성화하면 창의력이 좋아지나요?
DMN이 창의성과 관련된 사고 과정에 참여한다는 연구가 있지만, DMN 하나만으로 창의성을 설명할 수는 없다.
창의적인 사고에는 여러 뇌 네트워크의 상호작용과 기억, 지식, 주의 등의 요소가 함께 관여한다.
따라서 휴식이나 산책 중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는 있지만, DMN의 활성화가 곧바로 창의성 향상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Q3. 힘을 빼고 쉬는 것이 집중력에 도움이 되나요?
적절한 휴식은 장시간 이어지는 인지적 작업에서 피로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같은 문제를 지나치게 오래 붙잡고 있다면 잠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사고의 전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휴식의 효과는 수면, 스트레스, 작업 환경, 개인의 상태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Q4. 힘을 빼면 스트레스가 줄어드나요?
긴장을 줄이고 편안한 상태를 만드는 활동은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특정 행동 하나가 모든 사람의 스트레스 반응을 동일하게 낮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지속된다면 휴식뿐 아니라 수면, 생활환경, 사회적 지원 등 여러 요소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무리
우리는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더 오래 집중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뇌의 작동 방식을 살펴보면 집중만큼이나 주의를 내려놓는 시간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본모드 네트워크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뇌가 기억을 떠올리고 자신을 돌아보며 미래를 상상하는 등 다양한 내부 활동을 이어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물론 DMN이 창의성이나 휴식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해볼 만한 점은 있다.
항상 힘을 주고 있는 것이 반드시 가장 효율적인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생각이 막혔다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보자. 조용히 산책을 하거나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쉬게 해보는 것도 좋다.
잠시 힘을 빼는 시간이 반드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인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동안 쌓인 기억과 경험이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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